[한국현대
생활문화사] 시리즈의 마지막 권이 1980년대이다. 1990년대나 2000년대는 어찌 보면 아직 진행형이기에 되돌아
보기에는 시간이 좀 더 필요할지도 모른다. 생각해보면 1980년대는
바로 엊그제 일같이 생생하지만, 한편으로 보면 30여년 전의
일이기도 하다. 강산이 세 번이나 바뀌었지만 선명하게 기억되는 것은 아마 그 시기에 대학교를 다니고, 군대를 갔다 오고, 또 사회생활을 시작해서 일 것이다. 내 인생의 젊음을 보낸 시대이기에 아직도 뚜렷하게 남아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1981년
컬러텔레비전 방송이 시작되었다. 그리고 이듬해 프로야구가 시작되었고 야간통행금지가 해제되었다. 1986년에는 아시안게임이, 1988년에는 서울올림픽이 열렸다. 1987년 6월 민주화항쟁의 결과로 6.29선언과 개헌이 잇달았다. 그러나 이런 1980년대를 규정한 것은 1979년 박정희의 죽음과 이어 일어난
신군부 군사반란의 후폭풍이었다. 그리고 그 정점에 광주의 5.18 민주화운동이
있었다. 1980년대의 삶은 광주 5.18 민주화운동의 시간
속에 놓여 있었고, 그것이 일상의 시간을 재구조화하는 시대이기도 했다.
광주에 대한 죄책감과 분노가 독재체제에 대한 저항의 근간을 이루었다. 6월항쟁 후 사람들은
새로운 세상에 대한 꿈을 꾸기 시작했다. 특히나 7월에서 9월까지 이어진 노동자대투쟁은 인간다운 삶을 살기 위해 세상을 바꾸고 싶다는 욕망과, 동시에 세상이 바뀔 수 있다는 믿음을 널리 확산시켰다. 그러나 분신과
죽음이 이어진 1991년 5월항쟁의 실패와 1992년 3당합당의 열매로 인한 김영삼의 대통령 당선은 민주화의
길을 잃어버리게 만들었고, 사람답게 사는 세상을 꿈꾸었던 사람들의 가슴에 커다란 구멍을 뚫어 놓기도
했다.
이
시기 우리들의 생활문화는 어떠했을까? 먼저, 1980년대
음식문화에서 일어난 가장 큰 변화는 식단의 육식화였다. 1980년대는 곡류소비의 감소와 육류소비의 대폭적인
증가가 이루어진 시기로, 이를 바탕으로 1990년대 식단의
육식화가 공고해질 수 있었다고 한다. 우리사회를 주도하는 육류는 전통시대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언제나
돼지고기보다는 쇠고기였고, 오리고기보다는 닭고기였다. 그럼에도
돼지고기가 가장 많이 소비되는 것은 예산의 제약에 따른 현상이었다고 저자는 말한다. 그러한 돼지고기도
부위별 불균등소비가 이루어졌는데, 가장 많이 생산되는 부위인 삼겹살이 남아돌았다고 한다. 이에 공급은 사람들의 미각을 바꾸며 새로운 길을 개척하였는데 바로 소주와 짝짓는 것이었다. 삼겹살과 소주라는 조합이 탄광촌을 원점으로 하여 공단지대를 거치고, 기업의
저렴한 회식문화를 거치면서 마침내 국민의 사랑을 받는 음식으로 부상한 것이다. 그런가 하면 우리의 전통
육류소비방식은 여름에는 쇠고기나 돼지고기대신 닭고기나 개고기를 소비하는 것이었다. 닭고기 역시 1980년대부터 치킨이라는 국제화된 명칭으로, 그리고 튀기는 요리법과
함께 등장하면서 소비가 급증하기 시작했다. 공급은 또다시 소주, 삼겹살
조합에 맞서 맥주와 치킨을 조합함으로써 대표적 식품으로 키워냈다고 한다.
1982년
출범한 프로야구는 3월에 개막식이 열렸지만 1981년 11월까지만 해도 어느 팀이 창단될지조차 정해지지 않았었다고 한다. 5.18 민주화운동으로
야기된 체제의 위기를 타개하기 위하여 정권은 국민들을 우민화시키는 3S 정책을 적극 실시하였다. 프로야구 역시 이처럼 철저하게 정치적 의도를 안고 출발했다. 그러나
야구는 86, 88 양대회까지 스포츠 붐을 지속시키고자 했던 정권의 의지를 뛰어넘어 크나큰 인기를 누리게
되었는데, 저자는 그 이유를 몇 가지로 나누어 설명한다. 먼저, 프로야구가 지역연고제를 채택하면서 1980년대 초반까지 인기절정이었던
고교야구의 인기를 고스란히 이어받았고, 새로이 창간되기 시작한 스포츠신문에 야구기사가 지면을 도배하였으며, 컬러텔레비전의 보급과 방송기술의 발달로 야구 중계가 매일같이 이루어진 것이 그것이다. 거기에 더하여 야간경기의 실시는 평일에도 일을 마친 사람들이 경기장을 찾아 여가를 즐길 수 있게 만들어 주었다. 이러한 것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하여 프로야구는 지금까지도 하나의 스포츠 종목을 넘어 우리사회를 특징짓는 문화현상으로
자리잡았다고 한다.
1980년대
하면 88서울올림픽을 빼어 놓을 수가 없다. 올림픽을 앞두고
대대적인 재개발사업이 이루어졌으며, 이 과정에서 당시 세계 최대규모인
72만명의 철거민이 발생하기도 했다. 정권은 세계의 시선이 우리를 향하기 때문에 도시를
가꾸어야 한다는 명목으로 시민들의 일상에 개입하였다. 이는 올림픽을 사회를 통합하는 정치수단으로 활용한
결과이기도 했다. 이처럼 올림픽 준비과정에서 행해진 사회정치는 우리사회에 뚜렷한 차이를 지닌 2개의 집단을 부상시켰다고 한다. 하나는 풍요를 과시하게 된 사람들이고, 다른 하나는 감시대상이 되거나 사회로부터 배제 당한 사람들이 바로 그들이다.
이처럼 올림픽은 사회에 균열의 선을 긋는 것으로 귀결되었다고 저자는 말한다.
이
밖에도 1980년대 일어난 사건들은 무수히 많았다. 1983년
소련의 KAL기 격추사건, 버마 아웅산국립묘지 폭발사건, 남북이산가족 상봉, 1986년 금강산댐 사기사건, 1987년 김현희의 KAL기 폭파사건, 1989년 임수경의 방북, 헝가리를 시작으로 동구권과의 수교.. 이들 중 대표적인 것을 꼽자면 통일에 대한 논의가 봇물처럼 쏟아져 나왔으며,
소련과의 수교를 시작으로 북방정책이 추진되었다는 것을 들 수 있다.
그러면
이 무렵 북한과 동아시아는 어떠했을까? 북한의 1980년대는
남한에서와 마찬가지로 전쟁을 경험하지 못한 신세대의 등장으로 김정일의 음악정치의 내용이 달라졌다고 한다. 기존의
송가나 정책가요와는 주제나 내용이 완전히 다른, 인민의 일상생활을 소재로 한 생활가요가 만들어지기 시작했고, 1985년에 등장한 보천보 전자악단은 이를 주도했다. 또한 평양에
각종 기념비와 건축물들이 준공되거나 지어지기 시작했다. 북한의 대표적인 건축물인 평양산원, 주체사상탑, 개선문, 인민대학습당이
바로 1980년대의 산물이라고 한다. 한편 일본은 풍요의
끝에서 거품경제가 형성되기 시작하여 그들이 말하는 잃어버린 10년을 향해 나아가고 있었으며, 중국은 연안도시를 개방도시로 지정하고 경제특구를 중심으로 외자투자지역을 확대하는 등 경제 근대화를 향하여 걸음마를
뗀 시기이기도 했다.
[한국현대 생활문화사]는 창비 창간 50주년을 기념하여 기획되었다고 한다. 다양한 조건과 행위가 맛
물리며 역사가 창조되는 공간으로서의 생활문화영역, 일상의 생활문화를 통해 시대의 특성을 불어넣는 인간들의
행위, 그리고 그 과정에서 만들어지는 새로운 주체의 등장과 변화를 풍부하게 보여주고자 하는데 기획의도 가 있다고 한다. 1950년대부터
10년 단위로 세분하여 1980년대까지 생활문화사를 중심으로 한국현대사를 성찰하고 있는
셈이다. 한국의 현대사를 정치적인 사건은 물론 생활문화를 통해 다시 한번 알아가면서 우리의 현재를 규정하는
것들이 어떻게 생겨난 것인지를 새삼스럽게 생각해 볼 시간을 준다. 언젠가 다시 되돌아볼 1990년대와 2000년대는 어떻게 기록될 지가 궁금해진다.
시대와 삶을 함께 읽는다!
동시대 삶과 문화의 깊이를 더한 ‘한국현대 생활문화사’
삶의 향기를 품은 이야기로서의 역사, 한국현대 생활문화사 (전4권)가 오늘날 우리의 삶과 밀접하게 연결된 한국현대사를 바라볼 새로운 렌즈를 제시한다. 1950년대부터 1980년대까지 10년 단위 4권의 책으로 펴내는 ‘한국현대 생활문화사’ 시리즈는 정치적 격변과 세계사적 혼란 속에서도 꿋꿋하게 삶을 이어온 우리들의 부모님, 삼촌·이모들의 이야기를 담았다. 적어도 1950년대부터 1980대까지의 당대를 직접 겪은 이들의 역사가 생생하게 그려져 있다.
지금껏 한국현대사는 정치적 격변에만 주목해 서술되어왔다. ‘한국현대 생활문화사’는 정치사를 포함해 동시대인의 삶에 영향을 끼친 정치·경제·사회·문화의 모든 요인을 주목해 그 안에서의 삶의 양상들과 변화를 포착하기 위해 노력했다. 기획부터 집필까지 총 3년의 시간 동안 영화·음악·스포츠·음식 문화 등 생활문화 분야부터 농업·전쟁·경제·북한·민중운동 등의 역사학계의 주류 분야까지 다양한 각 분야 32명의 필진이 참여해, 정치사 위주로 쓰여진 통사를 넘어서는 새로운 관점의 한국현대사 교양서를 선보이기 위해 공을 들였다. 역사가 창조되는 공간으로서의 생활문화 영역, 이 공간에서 다채롭게 펼쳐지는 인간들의 행위, 그리고 그 과정에서 일어나는 새로운 주체의 등장과 변화를 다각도로 조명하며 한국현대사를 풍성하게 재구성했다.
‘한국현대 생활문화사’는 현대사를 단지 지난날의 이야기가 아니라 지금 우리 시대를 이해하는 데 꼭 필요한 ‘당대사’로서 주목한다. 당대의 여러 생활문화사적 변화들을 하나하나 짚으며 오늘날까지 우리 삶에 깊은 영향을 끼치고 있는 과거의 흔적을 실감나게 재현해냈다. 독자들은 그간 정치사 위주로만 접했던 한국현대사 곳곳에 배어 있는 ‘우리들이 살아온 이야기’를 함께 읽는 재미를 느낄 수 있을 것이다. 특히 20~30대부터 60~70대까지 이 책을 읽은 독자들이라면, 서로가 서로의 시대를 깊이 이해하고 공감하는 데 도움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기획의 말: 역사는 인간이 만들어나간다
크게 본 1980년대: 1980년대, 5월에서 6월로, 그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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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8년, 10년 후 통일을 상상하다 | KAL 007편 격추 사건, 미국과 소련의 마지막 충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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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택 분양제도 | 공동주택이 된 단독주택 | 5개 신도시 발표와 대규모 택지 공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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