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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가 목소리를 잃었을 때


세상과 이별해야만 하는 사람과 그 가족들을 많이 봐왔다. 조금이라도 그들을 돕고자 혹은 이해하고자 관련 수필, 이론서들도 많이 읽었지만 그 때뿐. 기억에 잘 남지 않았다. 미메시스의 그래픽 노블 중에 제일 좋아하던 책이 아티스트 시리즈였는데 이 책을 읽고 난 후 바뀌었다. 나는 여백과 생략이 있는 단편소설을 좋아하는데 이 책이 마치 단편같다. 긴 설명과 구구절절한 감정 묘사 없이 엑스레이 사진 옆에 누운 파울라가, 아빠의 편지를 목에 걸고 자는 미리암이, 꿈속에서 보게 된 유모가.. 독자들이 같이 느끼게 해준다.반 고흐 그래픽 노블에서도 비슷했지만 마지막 컷이 이 사람은 이제 해방이라고 알려주는 것 같았고 내용은 짧지만 결코 얕지 않았다
차가운 현실과 꿈같은 환상이 어우러진 한 편의 동화
어느 날 후두암 진단을 받게 되는 다비드. 가장 먼저 머릿속에 떠오르는 건 자신의 아홉 살 된 딸 타마르이다. 두 번째 부인 파울라와의 사이에서 나온 어린 딸이 아버지 없이 살아갈 생각을 하니, 죽음에 대한 두려움보다는 걱정이 앞선다. 그 어린 딸이 아버지의 고통과 죽음을 감당할 수 있을까? 물론 그의 삶을 이루는 나머지 두 여인인 맏딸 미리암과 부인 파울라 역시 슬슬 다비드 죽음을 받아들일 준비를 해야 한다. 그리고 다비드 역시 아버지와 남편의 모습에서 죽음을 어쩔 수 없이 받아들여야 하는 한 인간으로 스스로를 다독여 간다.

아버지가 목소리를 잃었을 때 는 벨기에의 일러스트레이터이자 그래픽노블 작가, 유디트 바니스텐달의 서정적인 그래픽노블이다. 가족의 죽음이라는 무거운 주제를 통해 인간의 회복 능력에 대한 깊은 믿음을 이야기한다. 아버지와 남편의 투병과 죽음에서 오는 상처를 가슴에 품은 등장인물들의 이야기 속에는 죽음이 부정적이거나 고통만을 불러오는 게 아니라는 사실이 담겨 있다. 죽음이라는 커다란 일 앞에서 쉽게 지나칠 수 있는 가족에 대한 사랑과 삶의 이런 저런 상처에 대한 치유 그리고 스스로 독립할 수 있는 강인함은 이 이야기 속에서 소중히 빛난다. 특히 죽음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아홉 살 난 어린 딸의 이야기는 환상적이며 발랄한 한 편의 동화와도 같아, 차가운 현실과의 대비로 가슴 찡한 감동을 맛볼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