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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의 말

“자기 나라 역사를 모르면 혼이 없는 인간이 되고, 바르게 역사를 배우지 못하면 혼이 비정상이 될 수밖에 없다”   2015년 11월 어느 날 대통령이 했다는 이 말을 접한 나는 한참을 생각했다. 대체 비정상인 혼은 어떤 걸 의미하는 것일까. 그는 또 “간절히 바라면 온 우주가 도와준다”는 말도 했다. 샤머니즘인지 토테미즘인지 모를 신앙을 만천하에 드러낸 대통령 앞에서 적잖은 사람들이 실소를 금치 못했다. 결국 온 우주의 기운은 그의 퇴진을 향해 있었던 듯, 그는 임기를 채우지 못한 헌정 역사상 첫 대통령이 되고야 말았다.   <대통령의 글쓰기>라는 책이 있다. 모두가 글을 잘 쓸 순 없겠지만 적어도 한 나라의 수장이라면 자신의 생각을 논리정연하게 글에 담아낼 정도의 능력은 지녀야 한다는 게 보편적인 생각일 게다. 안타깝게도 전 대통령 박근혜는 이과 출신이다. 오로지 문과만이 글을 잘 쓴다는 건 오해겠지만, 그가 남긴 글이 논리적이라는 이야긴 들은 바가 없다. 글이 조금 부족하더라도 말을 유창하게 구사한다면 지도자로서의 카리스마 발휘는 얼마든지 가능하다. 세상은 원래 불공평한지라 우리의 전직 대통령은 언변 또한 매끄럽지가 못하다.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치러진 후보자 간 토론 당시 그는 “수첩공주”라 불렸다. 수첩이 없이는 아무런 말도 내뱉지 못한다는 비아냥의 공격에도 불구하고 그는 대통령으로 당선됐다. 일말의 동정표가 큰 힘을 발휘했던 것 같다. 지금까지 지도자들이 본인은 물론 가족까지 나서서 재산 축적에 심혈을 기울였지만 국가와 결혼했다고 보아도 무방할 정도로 외로운 삶을 지탱해온 박근혜에게만큼은 그와 같은 일이 발생치 않으리라는 근거 없는 믿음이 작용했을 수도 있다. 원체 체감경기가 좋지 않았는데 한강의 기적을 일으킨 아버지의 후광에 눈이 멀었던 사람도 아마 일부 있었을 것이다. 시작은 언제나 원대하지만 끝은 그렇지가 못하다. 초라함을 뛰어넘어 민망하기 짝이 없는 끝을 목도한 우리는 다시는 이런 대통령을 우리 손으로 뽑아서는 안 된다며 한동안 반성하기 바빴다. 저자는 박근혜의 언어를 분석했다. 최순실 게이트가 본격적으로 표면에 떠오르면서 이제껏 주목 받지 못했던 많은 일들이 사람들의 분노를 샀다. 연설문을 대통령이 직접 쓴 것도 아니요, 참모도 아닌 제3 자가 미리 보고 고쳤다는 에피소드를 어찌 받아들이면 좋을지. 말은 엉성해도 글은 좀 낫지 않을까 했던 막연한 기대감은 무너지고, 그 빈자리를 ‘역시나’라는 씁쓸함이 채웠다. 사실 인터넷에서는 이미 오래전부터 박근혜 번역기가 유행했다. 그 정도로 그가 내뱉은 말을 이해하는 일은 쉽지가 않았다. 만연체를 구사하다 보면 주어와 술어가 서로 맞지 않는 일이 비일비재한데, 그의 말이 그러했다. 여기까지야 말주변이 없어서 그렇다며 너그러이 받아들일 수도 있겠다. 웃어선 안 되지만 책에 적힌 박근혜 어법을 가리키는 언어들을 접하며 나는 웃어버리고야 말았다. 오발탄 어법, 영매 어법, 불통 군왕 어법, 피노키오 공주 어법, 유체이탈 어법, 전화통 싸움닭 어법. 어쩜 이리도 주옥같은 표현을 사용했는지, 하나하나가 구체적으로 어떠한 것을 뜻하는지 굳이 살펴보지 않아도 알 것만 같았다. 많은 문제점 중 가장 큰 문제를 꼽으라면 박근혜의 문장에는 박근혜가 등장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대개의 지도자들은 I-message를 구사한다. 세계대전 당시 처칠이 했다는 연설문에는 수도 없이 많은 ‘I’가 등장한다. 모든 책임은 자신이 지겠다는 강력한 메시지에 힘입어 사람들은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쳤다. 반면 우리의 전임 대통령은 자신은 외따로 떨어져서 다른 이들을 탓한다. 국가의 정책이 잘못돼도, 거대한 사고를 국가가 나서 제때 수습하지 못해도 자신은 쏙 빠진 상태에서 행정부가, 입법부가, 사법부가 책임을 충분히 다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문장만을 놓고 보았을 때 그는 여전히 아버지가 통치하는 나라에서 살고 있었다. 지금이 자신의 말 한 마디에 모든 사람들이 머리를 조아리며 제 잘못을 고하는 그런 시대라고 착각하고 있기도 하다. 1960-70년대에는 통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다. 그래서는 절대 안 된다. 학창 시절, 생애 초기 부모, 특히 어머니의 영향력이 아이에게 절대적이라는 식의 이야기를 줄기차게 들었다. 3세 무렵까지는 엄마가 직접 아이를 키워야 한다는 이야기도 함께 들었다. 박근혜의 3세 이전 시기에 대해서는 알 길이 없다. 막연히 짐작컨대, 어머니 육영수에게 아이들은 의지할 수 있는 유일한 버팀목이었을 것 같다. 자녀는 나이 차이가 많이 나기도 했거니와 자신에게 충실하지도 않았던 남편으로부터 결핍됐던 많은 것들을 대신 채워준 존재였다. 지난 20년간 주소지가 청와대였던 박근혜는 제 어머니보다도 더 큰 결핍에 시달렸을 듯하다. 평범한 아이들이 누리는 학창시절이 그에겐 주어지지 않았다. 인간관계에도 제약이 많았다. 어느 누가 매사에 경호원이 달라붙는 이를 서슴없이 친구로 대하겠는가! 부족한 부분을 달래기 위해 그는 인터넷에 매달렸고 드라마에 정을 줬다. 그의 빈약한 문장은 그로부터 비롯됐다고 보아도 무방하다.   비정상적 국정 운영 이전에 비정상적 언어가 존재했다.   저자는 자신있게 외쳤다. 그의 언어는 그의 혼이 비정상이라는 걸 여실 없이 보여줬는데 우린 그 사실을 중요하게 여기지 않았다. 그 대가는 치명적이었다. 

비정상적 국정 운영 이전에 비정상적 언어가 존재했다 우리는 또다시 정치인의 언어에 현혹되지 않을 수 있을까? 박근혜의 말에는 박근혜가 감추려던 모든 것이 들어 있다 대통령은 도대체 왜 그렇게 말할까? 많은 사람들이 궁금해하던 문제를 추적한 책이다. 문법에 맞지 않는 어법, 유체이탈과 주술적 언어, 불필요한 지시사의 남발 등 온 국민을 갑갑하게 만든 대통령의 말 속에는 비정상적 언어 사회화 과정과 박정희 일가의 비극 그리고 우리 정치사의 흑역사가 담겨 있다. 박근혜의 말 은 이른바 ‘근혜체’를 여섯 가지 유형으로 분류하고 이런 어법이 나오게 된 이유를 파헤친다. 박근혜가 감추려던 모든 것이 그 말을 통해 고스란히 드러난다. 말에 현혹되지 않고 정치인을 제대로 바라보기 위해서, 다음 선거에서 좋은 대통령을 뽑기 위해서도 꼭 보아야 할 책이다.

머리말

1장. 박근혜가 언어로 지은 집
부끄러운 대통령 역사
20년간 주소지가 청와대였던 특수한 개인
주어가 없는 언어
주어가 생략되는 이유│불통을 넘어선 군왕적 어법│자연인 박근혜와 정치인 박근혜
정치판을 동물원에 비유한다면

2장. 불완전한 언어 습득의 배경
비정상적 사회화 과정이 낳은 난맥상
‘좋은’과 ‘좋지는 않은’만 존재하는 언어│삼 남매에게 공통적인 비정상 어법│근혜, 근령, 지만의 사회화 과정│[넬]과 박근혜
고맙고 진실한 사람 최태민
배신의 연대기│육영수의 죽음과 역사의 나비효과│개인적이며 절대적인 배신의 기준│넬과 소통한 최태민
육영수가 박근혜에게 당부한 것

3장. 대통령은 왜 그렇게 말할까
근혜체의 여섯 가지 유형
1) 오발탄 어법 -웃어넘기기엔 씁쓸한 블랙코미디
2) 영매 어법 -국사당 원무당의 재림인가
3) 불통 군왕의 어법 -혹은 장기판 공주 어법
4) 피노키오 공주 어법 -대중을 속인 언어 성형 정치
5) 유체이탈 어법 -사과할 줄 모르는 대통령의 마음속
6) 전화통 싸움닭 어법 -고상한 정치인의 속물성

실전 근혜체 고급 활용법
사고장애에서 오는 지리멸렬과 우원증│일단 늘이고 보는 불필요한 수식들│우리말 파괴의 현장
박근혜식 유머가 썰렁한 이유

4장. 콤플렉스와 박근혜의 언어
성격의 토양
정치가 타입과 거리가 먼 심리 유형│아버지 박정희에 대한 이중적 심리│박근혜의 불통 리더십
부성 콤플렉스, 신화와 그늘
올드 보이들이 편한 공주│지킬 의사도 없었던 공약들│딸에 의해 허물어지는 박정희 신화

5장. 칩거의 언어와 시선공포증
수첩공주의 무대공포증
외교 무대에서 나타나는 잦은 실수│원고와 수첩이 구세주
눈 맞추기가 두려운 대통령
기초를 제대로 익히지 못한 연극배우
청와대와 백악관

6장. 정치인의 말을 어떻게 볼 것인가
‘박근혜 현상’의 적폐
역대 대통령의 말
말은 결국 정치요, 그 사람이다

부록 1. ‘대통령’이라는 말의 뿌리
부록 2. 박근혜 및 주변 인물들의 종합 연보